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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및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에 대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모두 읽고 나면 3·1 운동 및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를 알아두시는 것에 기여가 될 것입니다. 3·1 운동 및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의 지식이 필요하신 분들은 모두 읽어주세요. 이제 아래에서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삼일절 3·1 운동
삼일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국경일입니다. 초기에는 삼일절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립선언일이란 명칭을 사용했었습니다. 3·1절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1일 토요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라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인 독립선언일입니다.
3·1 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국민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써 일제 강점 시 기절 가장 큰 민족운동이었습니다. 3·1 운동은 3월 1일 하루만 진행된 것이 아니 수개월 동안 전국 규모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3·1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이며, 학생, 시민 모두가 함께한 비폭력 평화 시위 었습니다. 초기에는 주요 도시에서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점점 농촌지역으로 확산되었고, 국외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점점 농촌지역으로 확산되면서 폭력투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제는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을 시작했고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3·1 운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이름 유관순 열사는 4월 1일 천안지역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3·1 운동으로 수감된 사람의 대부분은 농민이었으며, 그다음으로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농업종사자들이 많았으니 당연히 대부분의 국민이 농민이었고, 3·1 운동의 대부분 수감자도 농민이었습니다.
일제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냐면 제가 독립운동 중 사건 중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사건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미국의 남장로교 유진 벨 선교사님이 설립한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에서 1919년 3월 10일 광주지역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수피아여학교 전교생과 인근 농업학교 학생과 시민 1,500여 명이 만세운동이 확산되었고 일제 헌병대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있는 여학생의 팔을 일본도로 무참히 잘라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그 여학생은 계속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이후 호남의 각처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입니다. 아무리 국내에서 민족운동이 벌어져도 솔직히 말하면 이 소식이 외세로 전해지지 못하면 전 국민 대학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미국에서의 3·1 운동이라 불리는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 독립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한 시초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는 정말 대한민국에게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분들이 모르고 계셔서 안타까울 분입니다. 위에 간단하게 설명드린 3·1 운동은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미국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당시에 일제는 많은 로비를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는 정당한 행위로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을 포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이 두 명이 나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과 정한경이란 분입니다. 이 두 분이 미국의 시민들의 의식을 바꾸어놓았으며 대한민국 독립의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제는 한국이라는 작고 후퇴된 나라를 일본이란 나라가 발전시키고 개화를 현대화를 해주고 있다는 긍정적 행위라는 것으로 미국 언론과 상하원 포섭하였고 그런 일본의 행동을 반박하고 민낯을 조목조목 밝혀 언론에 내보낸 분이 헨리 정이라는 정한경 입니다. 그 이후로 미국 교회들은 자기들이 파송한 선교사를 통해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이승만, 정한경 같은 뛰어난 사람들까지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알게 되어 오히려 일본의 외교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선교사와 독립 비용 후원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선교사들은 이승만, 정한경 같은 사람들을 더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목숨 걸고 한국에 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으며, 파송된 선교사를 통해서 많은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정한경은 헨리 정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안창호,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인 국민회를 조직하여 재미교포 자치활동에 힘썼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 중 중요한 활동은 바로 대한민국이 완전한 정수를 수입할 수 있고, 외교권이 생길 때까지 일제가 아닌 국제연맹 위임통치로 보호받게 해 달라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제출하였고, 그 결과 미국 상원에서 대한민국 독립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개최입니다.
1919년 3·1 운동 소식이 미주지역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때 이승만, 정한경, 서재필 등 미주지역의 한인 대표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로 알려야겠다는 목적으로 결의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입니다. 이때 참석한 사람들은 한인 동포 약 150여 명, 톰킨스 목사, 스펜서 상원의원 등 미국인들도 참석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미국 정부 및 국민, 파리 강화 회의, 일본 지식인들에게 한국의 독 힙 의지를 알리는 5개 결의안을 채택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1919년 4월 14일~16일 3일간 필라델피아 리틀 극장에서 개최된 이 회의의 중요한 점은 바로 3·1 운동 이후 미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한인 집회로써 대한민국 독립의 정당성을 미국을 포함 전 세계에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 통신부, 등을 결성하여 조직적으로 3·1 운동을 펼쳐갔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독립의 안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회의 후 미국 독립기념관까지 만세 시가행진을 벌이며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 행사는 필라델피아 시장이 행사장을 마련해주고, 미국 경찰 기마대, 국악대 파견 등 행사를 적극 정으로 지원해주었으며 이 행사에 미국인 연사를 초청했고, 영문 회의록을 작성하여 배포하였고, 언론 보도를 적극적으로 해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제 여론화를 유도해주는 큰 도움을 해주었습니다. 당시 미국이란 나라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힘써주었습니다.
삼일절을 맞이해서 예전에 혼자 공부했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꺼내 작성하느라 부족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한눈에 보기
-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삼일절도 중요하지만 1919년 4월 12~14일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회의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 정한경 이란 분을 꼭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이분이 일본의 민낯을 미국 언론에 게재하였고, 이를 통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 미국이란 나라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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